우주가 당신을 부를 때
2024. 10. 8. 22:34

메인

GM

*̣̩⋆̩*̣̩⋆̩₊⁺*̣̩⋆̩*̣̩⋆̩
우주가 당신을 부를 때
*̣̩⋆̩*̣̩⋆̩₊⁺*̣̩⋆̩*̣̩⋆̩

숨이 차도록 뛰어도 닿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이미 너무 멀어져 버린 것들이나 사라져 없어져 버린 것들.

[…오늘밤 유성우가 떨어집니다.
10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규모로…].

그렇다면, 유성우를 타고 날아가면 어떨까요?

비록 사람은 유성우를 탈 수 없겠지만,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 또 사람이잖아요?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구에서 보내는 10년은 정말 오랜 시간입니다.

느린 속도로 나아가는 행성은 당신이 느끼는 시간을 조금도 줄여주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반감되지 않고 다가온 상실은 지금이 되어서까지도 메워지지 않았어요.

한편 유성우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던 뉴스는 새로운 우주비행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헤카테 10호는 최초로 안드로이드를 승무원으로 도입합니다.]
유인 우주선의 한계와 필요성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주제입니다.

그에 NASA는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인 테이아 9호의 발사를 알리며 한 가지 선언을 했습니다.

테이아 9호가 어떤 이유, 어떤 방식으로든 탐사 후 지구 복귀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 더 이상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겠다고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이름이 테이아가 아닌 헤카테라는 것에서 그 결과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테이아 9호 프로젝트는 실패했습니다.

서이무 역시 귀환에 실패했습니다.

이제 그 자리는 안드로이드로 메워지겠군요.

살과 피 없이 오로지 딱딱한 플라스틱만으로 이루어진 우주선이 쏘아질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찌 되었든 간에, 당신 역시 한때 우주비행사였고 지금은 NASA의 직원이니까요.

서이무가 없었던 동안 당신은 천고의 노력 끝에 NASA에 재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던, 시체 하나 없어 아직까지도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 서이무를 향한 미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발사 일주일 후 연결이 끊긴 이들을 죽었다고 판단하고 이미 장례식까지 치른 이들은 그런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요.

하지만 NASA에 사무직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테이아 9호에서 구조 신호가 잡히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온 통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실망하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도 이제 10년이나 지나니 실망조차 느껴지지 않더군요.

어쩌면 당신도 천천히 서이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벨 소리가 울립니다.

서유일

(오늘도 역시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날이다. 안드로이드에 관에서는 별 관심을 두고 있지도 않다. 제가 고민해야할 주제는 정해져 있으니. 휴대폰 꺼내 확인 해본다.)

GM

확인해보면 NASA 동료인 카론에게서 온 전화입니다.

서유일

(통화 수락 버튼 누르고서 귀에 가져다댄다.) 여보세요?

카론

- 오, 바로 받았다. 오늘 유성우 보러 갈래?

서유일

유성우? 나쁘지 않지. 언제 떨어진다 했더라?

카론

- 자정. 내가 좋은 곳을 알아. 그럼 1시간 전에 네 집 앞으로 갈게!

GM

그렇게 전화가 끊깁니다.

서유일

그래. ...(끊어져도 그리 답하고 휴대폰 집어넣는다.)
(문득 고개 들어 집 안 훑는다.)

GM

집은 거실, 서재, 서유일의 방, 서이무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실에는 소파, TV, 테이블이 있습니다.

서유일

(소파에 풀썩 앉는다.)

GM

전에 쓰던 소파가 망가졌을 때, 서이무와 함께 새로 골랐었던 소파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베이지 색이네요.

생각해보면 서이무는 언제나 당신이 좋아하는지를 우선시 했습니다.

개나리가 필 무렵에는 언제나 함께 산책을 나갔고, 처음 보는 간식을 발견하면 퇴근길에 당신에게 쥐여주었습니다.

그런 소소한 다정에서 당신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서유일

다 형 생각나서 좋아했던건데. (중얼이며 소파 쓸다 리모컨 찾으려 테이블로 시선 옮긴다.)

GM

커피가 담긴 머그컵이 올려져 있습니다.

서이무가 사라진 후 그의 습관을 따라 하게 된 것의 일환입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맛의 캡슐을 커피 머신에 넣고, 그가 자주 쓰던 머그컵에 커피를 내려 천천히 홀짝이며 마시는 것.

미련인지 애도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행동입니다.

서유일

(괜히 울적해져 고개 돌린다. 마침 보이는 리모컨 들어 TV 틀고.)

GM

서이무는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했던가요?

되짚어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영화관을 가도 TV 앞에 앉아서도 시선을 돌려보면 언제나 서이무와 눈이 마주쳤었죠.

어쩌면 그는 영화나 TV 자체를 좋아했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유일

부를 때면 대부분 책이 근처에 있었으니까. (그땐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생각난 겸 일어나 서재 문 연다.)

GM

책장에는 서이무가 읽던 책들이 한가득 꽂혀있습니다.

경제학이나 법학 따위의 그가 읽을 법한 두꺼운 서적들 너머로, 얇은 육아 에세이들이 몇 권 놓여있네요.

이 역시 당신이 그에게 남긴 흔적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겠지요?

당신이 10년이 지나도록 이 방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요.

먼지가 가득해 기침이 몰려옵니다.

서유일

언제 청소 한 번 해야겠네... (작게 찌푸리더니 이만 문 닫는다. 제 방으로 향한다.)

GM

이 집에서 유일하게 생활감이 느껴지는 방입니다.

넓은 집이지만, 이 방 바깥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당신에게는 그저 좁기만 합니다.

책장에 꽂아둔 일기장이 보입니다.

슬슬 더 늦기 전에 일기를 써야겠어요.

서유일

언제 마지막으로 썼더라? (서이무가 있을땐 거진 매일 펼치던 일기장을 본다. 마침 유성우를 보러가잔 약속도 잡혔으니 다녀와서 쓰면 될 터였다. 그리 생각하고 방 나서 오늘따라 그리운 이의 방 문 열어본다.)

GM

서이무가 떠나던 그 순간 그대로입니다.

서이무 답게 정갈한 방 한쪽에는 넓은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 자리에 앉아 당신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던 서이무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의 자리에 앉으면, 바로 앞에 놓인 당신의 사진들이 보입니다.

하나같이 당신이 환하게 웃는 장면들입니다.

그중 하나는 젤리와 과자를 입가에 묻힌 채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동그랗게 올려다보는 모습이네요.

그에게는 이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 걸까요?

의자를 빙글 돌리면, 온통 서이무의 흔적으로 가능한 방이 보입니다.

테이아 9호의 발사일이 정해진 날, 졸업식에 못 가게 되었다며 미안해하던 서이무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발사일 전날, 당신을 몇 번이고 달래고 안심시키며 토닥였던 서이무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돌아올 거라고.

꼭 네게 돌아올 거라고 했었죠.

….

거짓말쟁이.

*̣̩⋆̩*̣̩⋆̩₊⁺*̣̩⋆̩*̣̩⋆̩.

한겨울의 밤은 춥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아무리 두껍게 입어도 겨울의 추위는 어쩔 수가 없네요.

카론의 차를 타고 도착한 한적한 들판에는 우리 둘 밖에 없습니다.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 누운 카론이 말을 걸어옵니다.

카론

일은 좀 어때? 네가 통신으로 지원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네 전공은 통신과는 너무 멀잖아.

서유일

그런가. 나름 할만 하던데. (가볍게 웃음 지으며 하늘 올려다 본다.) 오늘따라 별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카론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네. 넌 우주비행사로서의 자질이 정말 훌륭했는데.

서유일

언젠가 우주에 가보고 싶긴 했지. 넌 어때? 별 일 없어?

카론

나야 늘 바쁘지. 슬슬 헤카테 10호 발사일도 머지 않았고.

서유일

그렇네. 안드로이드가 우주에 가서 잘 해줄까? 솔직히 난... 잘 모르겠거든.

카론

그래, 나도 우리가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아무리 그런 안드로이드들도 있다고 해도... 헤카테 9호 때문에 우리가 다 해산되어 버린 게 아쉬울 뿐이지.

서유일

응, 역시 그렇지? ......(그때 말렸다면 좋았을까. 같은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차오른다. 저 넓은 곳에 서이무가 어디 있을지 짐작도 하지 못하겠어서 한숨 내쉰다.) 떨어지는 유성우에 소원을 빌면 이뤄질까.

카론

혹시 모르는 일이지! 난 빌어볼래.

GM

반짝, 빛줄기가 스쳐 지나갑니다.

곧이어 하늘은 쏟아지는 별들로 가득 찹니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던가요.

별똥별이 이렇게 많은데, 진심을 다해 빌면 하나쯤은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서유일

그럼 나도. (떨어지는 빛줄기 눈에 담는다. 카론의 말대로 혹시 모를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귀 쫑긋 세우고서 서이무가 돌아오는 것까진 무리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만나게 해달라고. 아니면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 빌어본다.)

GM

소원을 빌고 난 뒤에도 하늘은 여전히 유성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별들 속에, 서이무 역시 있을까요?

당신이 그리워 돌아오고야 말았을까요…….

마지막 한 두 개가 하늘을 가르자, 유성우는 끝이 납니다.

관찰 판정.

서유일

CC<=55 [ 관찰력 ]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7 > 17 > 어려운 성공

GM

손으로 들판을 짚고 일어나면, 저 멀리 수풀 사이에 반짝이는 빛이 보입니다.

마치 방금 보았던 별 같은 반짝임입니다.

서유일

(수풀 헤쳐본다.)

GM

가까이 가서 보면 어느새 빛은 많이 줄어들어 있습니다.

은은하게 빛이 나는 유리구슬이네요.

이런 유성우는 인생에서 다시 보지 못할 테니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좋겠죠.

서유일

(주워서 반짝이는 것 이리저리 굴려본다. 마음에 들어 주머니에 넣어 챙긴다.)

GM

오늘 하루도 길었습니다.

이만 돌아가자는 카론의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없이 휑한 집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다녀왔다는 말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네요.

서유일

(천천히 숨 들이켰다 내쉰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괜하 주인 없는 신발 바라보다 집 안으로 몸 들인다.)

GM

집 안에는 차가운 공기가 흐릅니다.
쫓기듯 방 안에 들어가면, 그제야 사람이 사는 것 같아 보이는 곳이 나옵니다.

서유일

(겉옷 벗어 빠르게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책상 앞에 앉는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쳐 오늘 하루를 적어내려간다. 유리구슬의 감상까지 적고나면 서이무에게 남기는 짧은 메세지를 적고 일기장 덮는다.)

GM

이제 서이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는 당신의 꿈뿐입니다.
이만 잠에 듭시다.

서유일

(서랍장에서 작은 유리병 꺼낸다. 원랜 별사탕이 담겨있던 것인데, 병이 예뻐 버리지 않았다. 그곳에 유리구슬 담아 뚜껑을 덮고 머리맡의 사자인형과 늑대인형 사이에 두고서 침대에 몸 뉘인다. 어쩐지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을지도 모르겠다.)

GM

….

눈을 뜨면, 온통 회색빛인 공간입니다.

관찰 판정.

서유일

CC<=55 [ 관찰력 ]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8 > 58 > 실패

GM

낯선 원통형 공간입니다.

앞뒤로 둥근 문이 존재하네요.

서유일

(앞의 문 앞에 서서 살짝 밀어본다.)

GM

앞문을 여는 순간, 꿈이 끝납니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방 안을 헤매었죠.

기이할 정도로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출근을 위해 맞추어둔 알람이 울립니다.

상념은 접어두고 이만 나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서유일

(부스스한 머리를 털고 일어나 어제 올려둔 것과 시선을 나란히 한다. 배치가 꽤 마음에 든다. 침대에서 벗어나 나갈 준비 하러 방 밖으로 향한다.)
(토스트기에 빵을 넣고 방으로 돌아와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다시 돌아온 방에서 눈이 가는 유리구슬을 집어든다. 챙기는 이유는... 단순히 행운을 불러줄 것 같아서.)

GM

서류 가방을 집어 든 다음 차에 올라탑니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가동되며 당신은 한숨을 돌립니다.

창문 너머로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이 보입니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도착한 NASA는 언제나와 같이 각자 자신의 일로 분주합니다.

사무실에서 당신의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서이무의 방에 있는 테이블과 비슷한 모양새와 배치입니다.

당신과 서이무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줄지어 서 있습니다.

테이블 한 켠에는 서류더미가 쌓여있고, 중앙에는 서이무가 쓰던 것과 비슷한 모델의 컴퓨터가 있습니다.

습관대로 테이아 9호에서 온 통신이 있나 확인하지만, 언제나와 같이….

언제나와 같이?

확인하지 않은 영상 파일이 있습니다.

화면에서 불빛이 깜빡거립니다.

서유일

(눈 커져선 몇 번 깜빡이다가 영상 파일 열어본다.)

GM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재생시키자,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억 속 모습 그대로입니다.

- 2077년 7월 14일. 4번째 기록.
잡음이 잔뜩 껴있지만, 분명 서이무의 목소리입니다.

목소리마저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듣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진짜 서이무라는 걸요.

그나저나 4번째 기록이라니.

생각보다 작은 숫자입니다.
항해 초기에 찍은 영상인 모양입니다.

- 이상 현상은 사라졌고 선체도 안정적이다. 다만 확인해보니 항법과 통신 설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테이아 9호 프로젝트는 실패로 판명 났을 것이다…….

서이무는 탁자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두드립니다.

이 역시 익숙한 서이무의 버릇입니다.

낮은 중얼거림이 스쳐 지나갑니다.

- 아직은 아니라 해도, 시간 문제겠지.

순간 고개를 든 서이무와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 우리는 임무에 실패했다.

서이무는 그것이 그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우주선이 제대로 길을 찾아 나아갈 수도, 통신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면 지구로 돌아올 수조차 없습니다.

그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마지막 메시지일까요?

화면 속의 서이무의 시선은 이제 당신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깍지를 낀 채 침묵하던 서이무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엽니다.

- 이 메시지는 절대 네게 닿지 못할 테고, 너는 내가 없는 이별을 해야 할 테지만.

그는 희박한 가능성에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는 서이무라면 통신이 의미 없다는 걸 알자마자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겠죠.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서이무의 입에서 절대 나올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말이 나옵니다.

그 희망을 품는 마음은, 행운을 바라고 이뤄지기 요원한 것을 바라는 마음은, 당신으로부터 나온 것일 겁니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초라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던가요.

그는 당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작아 보입니다.

- 너라면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겠지. 식사 잘 챙기고, 학교도 잘 가고. 이제는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아도 되니까 놀고 싶은 대로 놀다가 들어와.

- 그리고, 유일아.
긴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 끝에는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쪽으로 다가오는 서이무가 있습니다.

-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생일 축하해. 2077년 7월 14일 기록 끝.

영상이 끝났습니다.

검은 화면에 당신의 얼굴이 비칩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테이아 9호에서의 영상 메시지라니요?

그것도 4번째인?

하지만 모든 의문보다도 먼저 찾아오는 것은 벅참입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이고, 듣는 목소리인가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동영상을 하나 재생합니다.

그 옛날 자신이 찍었던 동영상입니다.

영상 속의 서이무는 커피를 마시며 책 페이지를 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피를 내려놓고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동영상이 한 번 흔들립니다.

[이리 와, 유일아.]

[아냐. 나 지금 형이 책 읽는 거 찍고 있어.]

[그럼 형 계속 책 읽을까?]

[응.]
[알았어.]
대답대로 서이무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향합니다.

동영상은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담다가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내내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다음 동영상에서 서이무는 다정하게 웃고 있습니다.

과거의 당신이 급작스레 핸드폰을 들이댄 건지, 눈이 조금 커진 채입니다.

[왜?]

[기억하고 싶어서.]
[내가 웃는걸?]
고개를 끄덕이는지 화면이 조금 흔들리고, 서이무는 웃으며 당신을 끌어안습니다.

[나는 네 앞에서 늘 웃는데도?]
언제부터 이렇게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던가요.

화면 속 서이무의 웃는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적어도 서이무는, 연락이 끊긴 직후에도 살아있었습니다.

어쩌면 내일은 5번째 기록이 올지도 모릅니다.

매일매일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을 잃어가며 살아왔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없을 걸 알면서도 매일 빈 통신 기록을 확인할 때마다 욱신거렸던 심장이 생명을 되찾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살아있었구나.

하고.

서유일

(휴대폰에 떨어져 번지는 물방울을 소매로 닦아낸다. 제 눈가도 벅벅 문질러 닦고서 길게 숨 내쉬며 의자에서 주륵 미끄러진다.)
(눈높이 낮아진 채 영상 다시 튼다. 그리운 모습을 또 마주하고 마주보며 웃는다.) 형... 보고 싶어. (어디있어? 웅얼이고서 영상 한 번 더 튼다. 몇 번이고 돌려보다 제 휴대폰에 영상 다운 받고서 그제야 해야할 일을 시작한다.)

GM

어느덧 퇴근 시간입니다.
붕 뜬 마음은 도저히 가라앉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뭘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계속해서 서이무가 나오는 동영상을 돌려봤음에도 진정되기는 커녕 더 설레기만 합니다.

오늘도 집에는 당신을 반기는 사람 없이 텅 비어있지만,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침대에 누워도 서이무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립니다.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면, 벗어둔 겉옷이 보입니다.

그 주머니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유성우를 보러 가서 유리구슬을 주워 왔었죠.

어쩌면 이 구슬이 행운의 부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유일

구슬한테 고맙다 해야하나. (천천히 눈 깜빡이다 또 피실 웃는다. ) 이왕이면 좋은 꿈도 꾸게 해줘.

GM

잠자리에 들면 또다시 회색빛의 공간에서 눈을 뜹니다.

방은 원통형이지만 바닥만은 평평합니다.

신기하게도 창문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복도로 쓰이는 공간인지 아무것도 없이 앞뒤로 문만이 존재합니다.

서유일

(이번엔 뒤쪽 문으로 가 밀어본다.)

GM

뒷문을 열면 침낭들이 매달린 공간을 발견합니다.

서유일

(걸음 옮겨 침낭들 사이에 서본다.) 이게 다 뭐야?

GM

침낭은 모두 비어있습니다.

서유일

(고개 기울이고서 침낭 하나 죽 잡아당겨본다.)

GM

평범한 침낭입니다.

서유일

뭐 없네... (방 한 번 더 둘러보고서 걸음 돌려 그대로 앞쪽 문으로 향한다.)

GM

앞문을 열면 새로운 공간이 나타납니다.

새롭게 나타난 검은 방은 오밀조밀 효율적으로 공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서유일

(기계들 훑어본다.)

GM

지능 판정

서유일

CC<=65 [ 지능 ]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3 > 3 > 대단한 성공

GM

어딘가 익숙한 기계들입니다.

아, 이 기계는 확실히 압니다.

우주 통신에 쓰이는 것이었죠.

위에 카메라 렌즈도 달려있네요.

서유일

이게 왜 여기에? (알 수 없었다. 반대편에 있는 테이블로 향한다.)

GM

관찰 판정

서유일

CC<=55 [ 관찰력 ]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0 > 50 > 보통 성공

GM

여러 가지 종류의 실험 도구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실험을 하던 중 다른 급한 일이 생겼는지, 플라스크는 반쯤 깨져있고 그 안에 담긴 액체들은 쏟아진 채로 굳어있습니다.

지능 판정

서유일

CC<=65 [ 지능 ]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7 > 27 > 어려운 성공

GM

이곳은 마치 우주선 같습니다.

한때 당신 역시 미래의 우주비행사로서 훈련을 받았었죠.

그때 본 우주선 모형과 흡사합니다.

그때의 꿈을 꾸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서유일

그랬었지. (허리 숙여 액체 바라보다 콕 찍어본다.) 뭘 했더라?

GM

액체는 손에 닿자 기이한 모양으로 일그러집니다.

서유일

(고개 기울인다. 슬쩍 찌푸리기도 하다 손 털어낸다. 주변 서성이다 다시 기계장치로 가서 건드려본다.)

GM

딱딱한 금속이 만져집니다.
방을 직접 더 살피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순간, 발에 무언가 채이며 넘어집니다.

동시에 눈이 번쩍 떠지며 익숙한 천장과 함께 잠에서 깨어납니다.

신경을 갉작이는 듯한 거슬림이 느껴집니다.

또다시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기분 나쁜 꿈입니다.

현실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니, 꿈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런 액땜이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습니다.

따뜻한 옷을 걸치고 행운을 가져다준 유리구슬도 안쪽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습니다.

유리구슬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오는 것만 같습니다.

출근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음에도 NASA에는 불이 켜져 있습니다.

당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고, 괜히 책상 정리를 오랫동안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씁니다.

기대한 만큼 실망이 아프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차분한 자세를 하고 테이아 9호와의 통신 기록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서유일

좋은 꿈도 꾸게 해달라니까, 그것까진 쉽지 않았나보네... (마우스 움직여 두근거리는 것을 눌러담고 확인한다.)

GM

- 2078년 7월 14일. 16번째 기록.

지쳐보이는 서이무의 얼굴보다도 먼저 들어온 것은, 엉망이 되어버린 주변입니다.

꼭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물건들이 넘어지고 깨져있습니다.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끔찍한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 분란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되었다. 귀환파가 온건파를 전부 우주선 밖으로 쫓아냈고, 그대로 터져 죽었다.

- …고립 훈련에서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목적으로 좁은 공간에의 폐쇄를 감내하는 연습을 했지, 목적을 수행하는 것도 포기하고 귀환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저 무기한으로 우주를 떠돌며 버티는 연습은 한 적이 없다.

- 내분은 예정된 것이었다.
우주로 쫓겨나 순식간에 터져버린 것이 서이무가 아니라는 것은 다행인 일입니다.

전후 사정을 모르니 단편적인 정보로밖에 유추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귀환파는 임무 수행을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하자는 파벌이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해서 항법과 통신이 갑자기 고쳐져 방법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이겼느냐가 아니라, 서이무가 무사하냐일 겁니다.

다행히 화면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서이무의 몸에 눈에 띄는 부상은 없습니다.

- 카라가 사고 당시에 이상한 일그러짐을 보았다고 했다. 순간적이었지만 분명 무언가 이상했었다고.

생각에 잠겨있던 서이무는 인상을 찡그립니다.

-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어.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깡통 속에 담겨서 멍청하게 둥둥 떠다니는 것 빼고는.

이토록 여유를 잃은 서이무는 처음 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무력함에 시달렸다는 것이겠지요.

이렇게까지 아무런 답이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처음일 겁니다.

그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내던 사람이었으니, 도저히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지금에 절망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는 머리를 감싸 안습니다.

- 유일아…….

괴로운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는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화면에 대어봐도 느껴지는 것은 딱딱한 플라스틱뿐입니다.

고개를 든 서이무의 눈가는 붉어져 있습니다.

물기가 서려 미약하게 흔들리는 목소리가 영상의 끝을 알립니다.

- 2078년 7월 14일 기록 끝.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서이무는 이 영상이 당신에게 전해질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리가 없습니다.

그야 영상 속 서이무는 금방이라도 절망과 무력에 잠겨 죽을 것만 같았는걸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이무입니다.

그가 무너지는 모습은 평생 볼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토록 먼 곳에 앉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직접 구하러 가고 싶더라도 인간인 당신을 태워줄 우주선은 없으며, 만일 헤카테 10호의 임무에 테이아 9호의 구조가 포함된다 하더라도 임무를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어째서 테이아 9호 프로젝트는 실패해버리고 만 것일까요?

어째서 서이무를 당신에게서 빼앗고, 그 실패로 인해 당신이 서이무를 찾으러 갈 수조차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일까요.

이것이 누군가의 악의라면 이보다 지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서유일

이무 형. ......(상대와 마찬가지로 이쪽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그저 얼굴을 구길 뿐이다. 물론 소식이 오는 것은 기쁘지만, 왜 이런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GM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립니다.

서유일

(마른세수를 벅벅 하고 나서야 눈커풀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가. 굳었던 몸을 움직여 휴대폰 확인한다.)

GM

카론에게서 온 메시지입니다.
[지금 전화돼?]

서유일

[왜? 급한 일 아니면 10분만 있다가 걸어줘.]

GM

[아니긴 한데]
[승무원 명단 확인했어?]
[안드로이드 중 하나는 인간 출신이던데?]
한 신체 부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다치면 기계를 이식해 사이보그로 만들어주는 기술은 상용화된 지 오래입니다.
다만 아예 뇌만을 이식해서 안드로이드로 만드는 것은 정말 큰 중상이 아니라면 시행하지 않습니다.

만일 카론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 사람-안드로이드는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던 걸까요?

서유일

[진짜야?] (...메세지를 보내놓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목 아래로는 마비가 돼서 움직이지 못했다던가- 라며 예상안을 몇가지 내느라.)

GM

[진짜]
[맹세해]

서유일

[만나볼 수 있을까?]

GM

[승무원을? 아무래도 어렵지?]
[왜? 미련이라도 남아? 아무리 그대로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안드로이드까지 되는 건]

서유일

[무리지. 알아. 여튼 알려줘서 고마워.]

GM

메시지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서유일

(휴대폰 덮어둔다. 네번째와 열여섯번째 영상 사이의 서이무를 상상으로 떠올리기라도 해보며. 일기는 통 쓰지 않던 사람이 우주에 가선 꾸준히 기록을 남겼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되었다. 생각을 마치면 다시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볼 수는 없을까... 하는.)

GM

잠이 들면 또다시 익숙한 공간에서 눈을 뜹니다.

여기는 복도고, 뒷문을 열면 침낭들이, 앞문을 열면 기계와 실험 도구들이 있죠.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앞문의 공간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겨 바닥을 내려다보면,
관찰 판정

서유일

CC<=55 [ 관찰력 ]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8 > 88 > 실패

GM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형상이… 사람 같습니다.

비록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온전한 모양새는 아니지만요.

주위를 살펴보면 이런 것들이 더 있습니다.

이성 판정 (0/1D2).

서유일

CC<=55 [ 이성 ]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9 > 89 > 실패
1d2 (1D2) > 2
(기웃거리다 사람 형상에 다가가본다.)

GM

괴사한 시체입니다.
순간 시야 가장자리에서 무언가 반짝입니다.

그 곳을 향해 나아가면, 바닥에 피로 쓰인 글씨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성 판정 (0/1)

서유일

CC<=53 [ 이성 ] (1D100<=53)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9 > 79 > 실패

GM

관찰 판정

서유일

CC<=55 [ 관찰력 ]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8 > 48 > 보통 성공

GM

[돌아가면 꼭, 사랑한다 말할게.]
빛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핀다면 시체의 손가락에서 난 빛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유일

...형? (쭈그러 앉아 손가락 부분 살핀다.)

GM

몸을 숙여 자세히 살피자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반지네요.

잠시만요.

반지가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당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면 똑같은 모양의 반지가 있습니다.

당신과 서이무의 결혼반지예요.

그렇다면 이 사람은-.
또다시 불쾌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는 무의식적인 공포가 반영된다는데, 혹시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 때문에 자꾸만 이런 꿈을 꾸는 걸까요?

이 모든 게 꿈이었다거나, 서이무의 메시지가 뚝 끊긴다거나, 헤카테 10호 프로젝트가 취소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불안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정말 이 모든 게 꿈이었을지, 오늘은 서이무의 메시지가 없을지, 헤카테 10호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는지는 눈을 뜨고 일어나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만 침대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합시다.

서유일

(꿈을 꾸는 동안 어쩐지 울었던 것도 같다. ...어제보다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 한다.)

GM

헤카테 10호의 발사일이 가까워져서일까요.

NASA 건물에는 유례없이 많은 방들의 불이 켜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 당신의 자리에 앉습니다.

심호흡을 내쉬고 컴퓨터의 전원을 켭니다.

웅- 하고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어제의 메시지가 끝은 아니었을까?

오늘은 아무런 메시지가 없으면 어떡하지?

고민들이 머릿속 가득히 피어납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오늘도 영상이 와 있습니다.

- 2080년 7월 14일. 40번째 기록.
2년이 건너뛰어져 있습니다.

다행히 서이무는 그 내란에서 살아남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못합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몇 가지 근황을 설명하나 모두 별거 아닌 것들입니다.

하긴, 우주를 표류하는 이들에게 어떤 일상의 변화가 있겠나요.

그저 지독한 권태와 무력을 억지로 버텨내는 하루하루일 테지요.

- 유일아.

불현듯, 당신의 이름이 불립니다.

서이무는 당신을 곧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힘겹게 지어낸 미소는 처량하기만 합니다.

- 돌아가지 못해서 미안해.

떨리던 목소리는 이내 잔뜩 억눌린 흐느낌으로 변합니다.

터진 울음에 가쁜 숨을 쉬면서도 그는 말을 이어갑니다.

-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4번이나 전하지 못했네. 이제는 어른이 되었겠구나.
- 생일 축하해. 어른이 된 것도 축하하고.

그가 이토록 크게 우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아니, 그의 눈물 자체가 처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손을 뻗어 달래줄 수도,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이에는 몇 광년의 거리가 놓여있을까요.

서이무는 오래, 아주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내 눈물이 그치고 숨을 다 고르고 나서야 서이무는 다시 당신을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진짜 미소입니다.

늘 당신에게 향했던 바로 그 시선입니다.

- 사랑해.

…늘, 당신에게 닿았던 고백입니다.

- 네가 조금만 더 일찍 어른이 되었다면, 함께 올 수 있었을 텐데.
- …기억나? 우리 다시 만났을 때. 그 골목에서 말이야. 그때 네 얼굴을 너도 봤어야 했는데.

기쁠 일이 좀처럼 없는 이는 작은 것에도 쉽게 웃음을 보인다 했던가요.

서이무는 웃음이 터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위태롭던 웃음소리는 그 시작만큼이나 급작스레 뚝 끊깁니다.

거기에는 웃고 있으나 음울한 낯이 자리합니다.

- 보고 싶다.

꺼내볼 즐거울 추억이라고는 당신밖에 없어서, 몇백 광년이 떨어져 있는지 모를 곳에서도 당신의 생각만을 하는 이를 보니 어떻습니까.

애처롭나요?

아니면 그럼에도 당신만을 생각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나요…….

-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유일아. 유일아…….

그는 몇 번이고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대답은 그에게 전해지지 못합니다.

- 유일아. 형 좀 보러 와줄래. 네가 너무, 너무… 네가 보고 싶어…….

영상은 거기에서 끝납니다.

이전과는 달리 기록을 끝내는 말조차 없습니다.

서유일

(아, 도저히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어 눈을 몇 번이나 감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도 상대의 목소리에 눈을 뜨면 음울한 낯과 마주한다. 심장이 작게 요동치며 동공이 부푼다.) 형... ...나도 보고 싶어.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지, 돌아오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떠났나. 영상의 마지막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에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었다. 역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으나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는...)

GM

몇 번을 돌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이무는 울고, 그리워하고, 애원합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 곳은, 그러한 세계입니다.

그러니 가줘야겠죠.

서이무를 만나러 가야겠죠.

그가 당신을 부르니까요.

당신을 죽도록 그리워하니까요.

서유일

(안절부절 자리 주위를 뱅뱅 맴돌다 우선 휴대폰을 켜본다.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있을까.)

GM

핸드폰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자리합니다.
당신의 상급자 번호 역시 있습니다.

서유일

(조르기만 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안 해보는 것보단 낫다고... 전화 걸어본다.)

GM

신호음이 길게 가나 결국에는 상대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이 나옵니다.

서유일

[시간 되실때 연락 주실 수 있나요?] (메세지 남긴다. 그렇다면 제 연락처에 없는 사람중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머리 굴려본다.)

GM

지능 판정

서유일

CC<=65 [ 지능 ]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0 > 40 > 보통 성공

GM

당장 우주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헤카테 10호입니다.
인간이 승무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고요.
하지만 우주는 넓습니다.
무작정 나간다고 해서 테이아 9호를 만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두 프로젝트의 목적은 다르니까요.

서유일

CC<=65 [ 지능 ]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2 > 92 > 실패
(헤카테 10호를 타고 나간다 해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우주로 가는게 우선이었다. 그렇다면 되는대로 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도로에 뛰어들기라도 해볼까?)

GM

그 사이 무슨 일이냐 묻는 답장이 와 있습니다.

서유일

[저도 헤카테 10호에 타고 싶어서요. 안 될까요?]

GM

[무슨 일이길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서유일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우주에 가고 싶어요.]

GM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내 권한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지.]
[대답은 않겠다]

서유일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지우길 반복한다. 결국 다시 착석해 의자에 반쯤 눕는다.)

GM

시간만이 흘러갑니다.
다음 날,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컴퓨터를 켜 똑같은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 …….

하지만 영상을 틀고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서이무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배경부터가 평소와 다릅니다.

카메라가 옆으로 쓰러진 것만 같습니다.

그때 끔찍한 신음소리와 함께 검고 커다란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아니, 그것은 서이무입니다.

얼굴의 절반 이상이 검게 썩어들어갔지만 알 수 있습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습니다…….

글자를 적어내려가던 검지마저 검게 썩어버리고, 더 이상 글을 쓰기 위해 낸 상처에서 피가 흐르지 않습니다.

급하게 약지를 물어뜯어보지만 머지않아 양 손이 모두 썩고 맙니다.

바닥을 기고 짚어 몸을 일으킨 서이무가 잇새에서 피를 흘립니다.

툭, 툭.

바닥에 혈흔이 남습니다.

억지로 팔을 움직여 피로 글씨를 써내려갑니다.

몇 초 뒤,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의 생이 멎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시야에 플라스크가 널려있는 테이블이 보입니다.
실험을 하던 중 다른 급한 일이 생겼는지, 플라스크는 반쯤 깨져있고 그 안에 담긴 액체들은 쏟아진 채로 굳어있습니다.

지능 판정.

서유일

CC<=65 [ 지능 ]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4 > 24 > 어려운 성공

GM

그동안의 꿈은 모두 테이아 9호였습니다.

당신은 꿈에서 그 곳에 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없었죠.

있는 것이라고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시설들, 그리고 검게 썩어버린 시체들… 손에 결혼반지가 끼워져있었던 시체… 당신과 서이무의 결혼반지와 똑같이 생긴 반지…피로 쓰인 유서…….

그리고 그제야 보이는, 화면 한 구석에 쓰러져있는 시체.

그리고 그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은빛 반지.

보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

서이무는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에 다다라서까지 당신을 생각했을까요.

당신을 그리워했을까요.

당신을 보고 싶어 했을까요.

당신이 더 빨리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을 슬퍼했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이 곳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을까요.

어느 쪽이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헤카테 10호를 둘러싸고 바쁘게 돌아가는 직원들 사이, 당신의 시간만이 의미없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발사 당일.
[3].

[2].

[1].

[발사!].
우주선이 뿜어내는 불꽃이 강렬한 빛을 냅니다.

수많은 유성우가 합쳐진다면 이토록 밝은 빛을 낼까요.

그리고 당신은, 그 불꽃 바깥에 서 있습니다.

한 겹의 유리막을 사이에 둔 채로 당신은 그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습니다.

또다시 우주로 나아가지 못했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그 사이 당신은 어른이 되었고, 당신의 선택으로 지구에 남은 것이니까요.

우주는 너무나 공허합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공허에, 남은 모든 것을 던질 필요는 없겠죠.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큰 것을 잃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입니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추억만이라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과거는 남겨두고, 미래로 나아가며…….

- 사랑해.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서이무의 목소리가 나오는 화면이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해질 날도 오겠지요.

- 보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서이무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날도 올 겁니다.

ENDING 1: 건너편에서 들려온 것은,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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