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GM
Summer thorn
여름의 가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혜택은 망각이라는 기능이다.
충격적인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며,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고 만다.
뇌는 중요한 것 외에는 자동으로 생략해 받아들이기 때문에, 회피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이득을 준다.
당장 사진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 인간은 뇌에서부터 피사체 외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 것을 자동으로 해 온 신비한 존재이다.
KPC.루즈코프
PC.발렌틴
[하늘] 🌫
눈을 뜹니다.
역광으로 비치는 당신의 모습 왼편에 푸른 하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면 당신의 뺨 옆으로 땀이 한 줄기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벽에 붙어있는 선풍기는 고장 나기 직전인지라, 잘 맞물리지 않는 소리와 함께 돌아갑니다.
수업을 듣고 있었군요, 어떤 수업이었을까요.
시선을 내리면 새하얀 셔츠 바깥으로 튀어나온 당신의 두 팔이 책상 위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것이 느껴집니다.
감각은 이윽고 선명해집니다.
그러자 당신의 손 밑으로 하얀 종이 뭉치가 툭, 떨어집니다.
뭉쳐진 크기를 보아하니 쪽지인 것 같아요.
뭘까요?
발렌틴 레베데프
(불쾌한 끈적임에 팔을 책상에서 떼어내고는, 쪽지를 주워 펼친다.)
GM
하늘이 엄청 파랗다.
고 쓰여있습니다.
발렌틴 레베데프
(하늘이 파랗지 그럼.)
GM
종이가 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한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누구인가요?
[관찰] 판정
발렌틴 레베데프
cc<=80 관찰력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6 > 26 > 어려운 성공
GM
명찰에 루즈코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루즈코프, 당신은 루즈코프와 잘 아는 사이인가요?
모르는 사이인가요?
말간 낯으로 하얀 교복 셔츠를 입고 있는 그는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킵니다.
철제 창문 바깥에 드리워진 하늘이 물처럼 일렁입니다.
그 아래에 놓인 흙바닥 운동장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축구라도 하며 노닐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분명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공간이 분리라도 된 듯 수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과 루즈코프, 세상에 둘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청량한 하늘, 제 몸 아래로 쏟아지는 땀, 숨을 쉬면 들어차는 축축한 향.
여름이라는 이름의 계절이 나부낍니다.
ㅡ
수업 종이 울리자 모두가 일제히 밖을 나섭니다.
당신도 나가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와중 루즈코프가 당신의 책상을 건드리며 말을 건넵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우리 옥상 가자.
발렌틴 레베데프
옥상은 왜? (그렇게 물으면서도, 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세웠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파란 하늘이 보고 싶지 않아? (일어난 네 손을 잡고 당긴다. 말이 끝나기도 채 전에 한 발짝 내딛으며.)
GM
당신은 루즈코프를 따라 옥상으로 향합니다.
수많은 학생이 돌아다녀요, 각자 점심시간을 보내겠죠.
당신의 옆을 따라 걷는 것은 루즈코프입니다.
당신은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기억나나요?
루즈코프 레베데프
보통 학교 옥상은 잠가놓지 않나? 열어두는 거 신기하네.
사람이 많으려나, 많으면 복잡하고 짜증 나겠지?
너는 어때 티냐?
발렌틴 레베데프
잠길 거라 생각했으면서 오자고 한 거야? (그러나 말투에는, 책망보다는 의아함이 담긴다.) 다들 잠겨있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 아마도 없겠지. 우리밖에는.
루즈코프 레베데프
아마 그렇겠지?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GM
보폭이 맞춰진 발소리가 바닥을 쿵쿵 때립니다.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드는 것은 당신이 수업 시간 때 보았던 푸른 하늘입니다.
뜨거운 바람이 전신을 에워싸지만 불쾌한 느낌이 들진 않습니다.
하늘은 끝을 모르는 듯 높게 치솟아있습니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몇 점만이 이 세상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시켜줄 만큼 비현실적으로 고요한 공간입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챙겨왔나요? 책이라던가, 먹을 것이라던가, 워크맨 같은 것 말입니다.
루즈코프는 당신의 옆에 누워 테이프를 넣은 것을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그러다 당신에게 자신이 끼고있는 이어폰 한쪽을 내밀어요.
그와 함께 누워 노래를 듣고있어도 될까요?
다른 학생들이 오진 않을까요?
걱정하던 와중, 루즈코프를 바라보면 그는 그냥 제 배 위에 양손을 얹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함께 노래를 들을까요?
발렌틴 레베데프
(네 가슴팍 위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제가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양새다. 아니면 아랑곳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눕고는 이어폰의 한 쪽을 귀 안으로 밀어넣었다. 뜬 눈에는 푸른 하늘이 담긴다. 그제서야 파랗긴 파랗네, 하는 감상을 가지는 것이다.)
GM
루즈코프와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짙푸른 빛의 하늘이 쨍쨍하게 당신의 각막으로 내비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이 수 십 번, 수백 번 눈을 감았다 떠도 영원히 같은 하늘빛일 것 같습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바다는 하늘이랑 비슷하지, 푸른색이 바탕인데 간혹 검어지기도 하고, 햇빛에 따라 빛이 달라지니까.
구름은 파도고, 노을은 모래사장인거야. 하늘과 땅이 같은 곳이라니 정말 신기하지.
GM
[지능] 판정
발렌틴 레베데프
cc<=60 지능 (아이디어)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5 > 45 > 보통 성공
GM
돌이켜보면, 마침 당신이 사는 동네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이곳은 바다의 근처에 세워진 도시니까요.
루즈코프 레베데프
내일 바다 놀러 갈래? 날씨가 괜찮다면. 사실 비가 와도 나름대로 좋겠지만…
발렌틴 레베데프
(감상적이야, 라는 생각이 든다. 제 쌍둥이가 낭만적이었던 것은 하루이틀도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새삼스레 더. 그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네 말을 듣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라.) 오늘 말고?
루즈코프 레베데프
오늘은 할게 많기도 하고. 놀러갈거면 제대로 하루를 비우고 가는게 좋으니까. 그렇지? 뭣보다 내일은 주말이잖아.
발렌틴 레베데프
네 마음대로 해. (그러고서는, 눈을 감아버린다. 제안하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가 거절할 리 없었으니까. 선언하거나 통보해도 될 텐데.)
GM
워크맨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루즈코프가 작게 웃는 소리도 들렸을지 모르겠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당신은 똑같이 수업받고 집에 가, 저녁을 먹고, 잠에 들겠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부분들입니다.
눈을 감고 후덥지근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당신의 심장박동에 숨을 맞춰 들이쉬다, 다시금 내쉽니다.
언제나와 같은 날입니다.
ㅡ
[장마] ☔️
…
오후인 듯한데, 하늘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코안으로 후덥지근한 향이 풍겨옵니다.
창밖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축축한 몸은 움직일 때마다 끈적거려 불쾌해지기 일쑤예요.
오늘은 주말입니다, 학교에 갈 일 없이 편안하게 늦잠을 자기도 했죠.
당신은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나요?
하나 확실한 것은, 등굣길에 양말이 젖을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점 정도겠어요.
안 그래도 찝찝한데, 와중 어질러진 당신의 방이 눈에 띕니다.
피곤하지만 조금은 정리해볼 수 있을까요?
[옷장] [책상] [침대 주변]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발렌틴 레베데프
(일어나 침대 주변부터 정리한다.)
GM
[침대 주변]
이것저것 널브러져 있습니다.
양말이나, 영수증 조각, 마시던 음료수 같은 것들이 놓여 있어요.
당신은 그곳에서 소설책을 한 권 찾을 수 있습니다.
데미안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 애써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돌이켜 생각해보고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이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그러나 역시 아름답지 않았던가.
발렌틴 레베데프
(책을 들고 책상으로 가, 내려놓는 겸 정리한다.)
GM
[책상]
책상 위에는 필기구, 교과서 등이 보입니다. [장래 희망 계획서]와, 작은 [라디오]가 하나 놓여 있어요.
발렌틴 레베데프
(장래 희망 계획서 읽어본다.)
GM
[장래 희망 계획서]
장래 희망이라…. 당신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다, 어떠한 결말을 맺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텐데요.
이런 것들은 참 허울 좋은 망상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적어볼 순 있을 것 같아요, 딱히 할 것도 없고 말이죠.
발렌틴 레베데프
(장래 희망이라. 되고 싶은 것은 딱히 없었다. 대부분의 현실주의자가 그렇듯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의사를 적어넣는다.)
(라디오 틀어본다. 누군가 좋아하는 노래라도 나오려나.)
GM
[라디오]
어떤 주파수에 맞춰도 틀어지지 않습니다.
발렌틴 레베데프
(툭툭 두들겨본다.)
GM
칙. 치직- 하는 잡음만이 들려올 뿐입니다.
발렌틴 레베데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옷장 정리하려 향한다.)
GM
[옷장]
교복이 몇 벌 걸려 있습니다. 사복 같은 것은 없어 보입니다…. 세탁하기라도 한 건가요?
ㅡ
빗소리는 끊이질 않습니다.
당신을 여름 한 가운데에 가둬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장마는 계속됩니다.
꼭, 영원한 여름에 갇힌 것만 같습니다.
침대 위에 놓인 이불은 축축해 부스럭거릴 새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곧 비는 멎겠죠, 이 여름이 금세 지나가고, 가을을 지새운 뒤, 겨울을 보내면 당신은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야 꿉꿉하겠지만, 그래요. 뭐든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밑에서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려가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발렌틴 레베데프
(부름에 짧게 대답하며 목소리를 따라 내려간다.)
GM
내려가보면, 우산을 챙겨든 채 문을 가만히 바라보는 루즈코프가 보입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바다 보러 가지 않을래?
GM
그렇게 말하는 루즈코프의 웃는 낯이 보입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시간이 좀 남으니까, 비도 멈췄거든.
발렌틴 레베데프
어제 그러기로 했잖아.
루즈코프 레베데프
네가 확실한 답을 안줬던 것 같아서.
발렌틴 레베데프
갈 생각이 없었으면 이 시간에 일어나지도 않았을걸. (베, 혀를 내밀고는 네 목에 팔을 두르며 매달렸다.) 졸려.
루즈코프 레베데프
졸려? (네 눈가를 쓸며 부드럽게 뺨 도닥이고는 신발장에서 신발 꺼낸다.) 나가서 바람 쐬면 잠도 깰거야.
GM
ㅡ
당신의 집은 동네가 보이는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바닷가 근처이기 때문에 지대가 제법 높은 편이에요.
도로가 자리한 곳에서 내려다보면 넓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입니다.
비가 갠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에 스며든 빗물이 향을 뿜어요.
[관찰] 판정
발렌틴 레베데프
cc<=80 관찰력 (1D100<=8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6 > 16 > 대단한 성공
GM
수평선 너머에 안개가 짙게 껴있습니다. 해가 잘 보이지 않아요.
루즈코프 레베데프
자전거 탈 줄 알지? 같이 타고 내려갈까?
GM
[놀이터], [사진관], [전파상]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발렌틴 레베데프
루샤. (부르고는, 입술을 꾹 찍었다. 뽀뽀를 하면 제 말을 들어준다는 것이 체득된 탓이었다.) 잠 안 깨는데. 더 자고 갈래.
루즈코프 레베데프
(빙글 웃으며 제게 부탁해오는 상대의 눈가 훑었다.) 많이 졸려? 지금이 제일 예쁠 때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대의 풍경을 네게도 보여주고 싶어 티냐.
발렌틴 레베데프
졸려. (답변은 즉각적이었으나, 이어지는 말에는 별 수 없다는 듯이 네게 머리 기대기나 하였다.) 그럼 뒤에 탈래.
루즈코프 레베데프
알았어. 꽉 잡고 있어야해.
GM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 사진관에 멈춰 섭니다.
루즈코프는 어딘가를 가리킵니다.
사진관이라니, 보통 원서를 넣거나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는 목적이 아니면 잘 가지 않는 곳인 듯한데요.
루즈코프 레베데프
한 장씩 찍어서 남겨봐도 괜찮을 것 같아서.
GM
루즈코프와 사진을 찍을까요?
발렌틴 레베데프
(자전거를 타느라 허리에 손을 두르고 턱을 어깨에 얹은 그대로, 시선만을 사진관에 두었다.) 같이 찍을래. (청유문이 아닌, 선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신이 네 말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듯 너 역시 그러하다는 걸 잘 알기에.)
루즈코프 레베데프
그래. 같이 찍자. (자전거를 한 쪽으로 슬쩍 기울이고.) 내려봐.
발렌틴 레베데프
(고개를 떼고, 손을 풀고는 자전거 아래로 내려와 발을 디뎠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저도 내려서 자전거를 고정시켜 두고 네 손 잡아끌어 사진관 안으로 걸음 한다.) 저기, 서 있어봐 티냐. 타이머만 맞추고 나도 갈게.
발렌틴 레베데프
(서있는 채로 너를 기다리면서도, 시선은 계속 너를 좇는다.) 루샤, 빨리 와.
루즈코프 레베데프
(카메라 만지작 거리며 타이머 설정을 해두고서 네게 달려가 옆 쪽에서 끌어안는다. 맑은 웃음 띄운채 시선은 카메라 향하고.) 브이~
발렌틴 레베데프
(반면 그의 시선은, 사진이 찍히는 소리가 나는 순간까지도 상대를 향해있었다. 소리가 나고 나서야 생각났다는 듯 앞을 바라본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찰칵, 모습이 담기고 시선은 위를 향한다.) 앞 제대로 보고 찍은거 맞지 티냐? 응?
발렌틴 레베데프
(솔직하게 말할까, 하는 생각과 귀찮음이 공존한다. 졸린 이에게는 결국 후자가 더 중요했던 것인지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잠시 의심스럽게 바라보다가도 시선 거둔다. 그리고서는 또 멋대로 손을 잡아끌어 사진관 나서서 어딘가로 바삐 걸음 옮긴다.)
GM
[놀이터]
모래가 촘촘히 깔린 바닥 위에는 여러 가지 탈것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네도 있고, 시소도 있고, 미끄럼틀이나 정글짐 같은 것도 있어요.
이런 것들을 타며 놀아 볼 나이는 지났던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을 좀 보내는 데에 나쁘진 않겠죠.
루즈코프 레베데프
(앞서가 그네 하나를 차지하고.) 밀어줘.
발렌틴 레베데프
바다 가자며? (결국에는 툭, 하고 불만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바다에 다녀온 뒤 마저 자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터덜터덜 걸어가 그네를 밀어주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사실은, 너랑 놀고 싶어서 같이 나오자 했어. 별로야? (그네가 흔들림과 동시에 다리도 한들거린다. 고개 살짝 돌려 뒤 돌아보고서.) 싫어도 오늘만 어울려주라~
발렌틴 레베데프
그러면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입술을 비죽인다. 뚱한 낯이 자리했다.) 왜 거짓말을 해? 나는 너한테 거짓말 한 적 없는데.
루즈코프 레베데프
하지만 네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단 것도 사실이야. 따지자면 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지. (상대의 뚱한 낯과는 다르게 미적지근한 바람을 맞는 이는 소리내어 경쾌하게 웃는다.)
발렌틴 레베데프
꼭 바다가 아니어도 되잖아. 같이 자도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다른 성격과 관점을 드러낸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너랑 많은걸 하고 싶어. 그래야 내 생각을 하는 폭이 넓어질거 아니야?
발렌틴 레베데프
나는 나의 세상에서 늘 네 생각을 해. 내 세상이 넓어지면 꼭 그만큼 너도 넓어져. 전부라는 건 그런 거야. 억지로 늘릴 필요가 없다고.
루즈코프 레베데프
(가만 흔들리며 네 말을 담다가 흔들리는 그네에서 뛰어내려 안정적으로 착지한다. 네게 손 뻗고.) 가자. 네 전부가 주고 싶은게 있어.
발렌틴 레베데프
(손이 내밀어지면 당연하다는 듯이 맞잡는다. 스스로를 칭하는 낯 간지러운 호칭에도 부끄러움에 살짝 찡그릴 뿐 대거리를 하진 않았다.) 뭔데?
루즈코프 레베데프
가보면 알아.
GM
[전파상]
루즈코프는 잠시 들러야겠다며 당신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데려갑니다.
여러 가지 전자기기들이 놓여있어요. 무선호출기나, 워크맨이나, 유선전화기 같은 것들이요.
금세 그는 뒤를 돌아 당신을 바라봅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워크맨, 가지고 있던가?
발렌틴 레베데프
아니. 네가 가지고 있잖아.
GM
그는 당신에게 테이프 하나와 그것을 넘깁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나중에 써봐. 이것저것 녹음하면 쓸만해.
발렌틴 레베데프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지만, 마다할 것도 없었다. 받아든다.)
GM
ㅡ
당신이 루즈코프와 주변을 돌아다니던 와중, 당신의 콧잔등과 팔목께에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하늘을 보면 바다 위를 제외한 곳에 먹구름이 조금씩 껴가는 것이 보여요.
다시금 비가 오려나 봅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비 오기 전에, 어서 가야겠네.
발렌틴 레베데프
나 우산 안 가져왔어.
루즈코프 레베데프
괜찮아. 같이 쓰자.
GM
ㅡ
[바다] 🌊
짙푸른 바다에서 파도가 연신 쏟아져 나옵니다.
일렁이는 푸른 물들이 사방을 흩어버리듯 마구잡이로 물결치기 시작합니다.
저편에 놓인 해는 노을이 져가는 시간인 탓인지, 세상을 집어삼킬 듯 가득 커진 채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짠바람이 느껴져요.
수평선 위를 제집인 듯 노니는 새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당신과 루즈코프는 그곳에 서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숨을 쉬기만 해도 땀이 배어 나오는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에 더해, 피부 겉에 짠 바다가 몰고 온 소금기가 달라붙는 것 같습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예쁘지?
GM
루즈코프는 그렇게 말하며 나란히 당신의 옆에 서 있더니, 이내 주저앉아 숨을 들이쉽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이런 하루가 영원했으면 좋겠어? 하늘과 땅이 사실은 붙어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이곳에서.
혹시나 영원하지 않더라도, 이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을 거야. 그렇지?
맞아, 다른 게 아니라….
세상은 멸망했으니까.
GM
루즈코프의 말이 끝나고, 당신은 눈을 감았다 뜹니다.
…
(san 1/1d5)
발렌틴 레베데프
cc<=70 이성체크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5 > 15 > 어려운 성공
system
[ 발렌틴 레베데프 ] SAN : 70 → 69
GM
…
수많은 플랑크톤이 죽어 떠내려오는 붉은 바다가 보입니다.
노을빛을 녹인 파도 색은 핏빛으로 불타오르고 있어요.
멸망해있었던 거예요.
거짓이 씌워진 청량하기 그지없던 폐허는 이제 잿빛으로 탁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바다는 꼭 하늘과 같아요.
당신이 이전에 본, 푸른 하늘은 아니지만.
타오르는 해가 아지랑이로 변해 세상을 덮치고 있는 이 광경이 하늘과 같다 하지 않으면 이를 뭐라 할까요.
루즈코프 레베데프
너는 현실에서 도피한 거야.
다시는 살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으니 마음의 문을 잠시 닫고 훗날을 기약한 거지.
나는 그걸 도왔지만, 너와 지내오면서 느낀 건데, 넌 이겨낼 수 있어. 현실로 돌아가자.
내가 너를 도와줄게.
GM
붉은 해안가에서 당신의 발목을 파고드는 물은, 당신의 몸에 닿으면 투명한 빛으로 부스러집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하늘은 다시 푸르게 변할 거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난 뒤, 일 년이 넘고, 몇십년 더해지게 된다면 너는 내 존재를 희미하게만 느낄 거야.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지금 풍경이 예쁘니까, 그것만 알아두면 좋겠네.
발렌틴 레베데프
(초점이 흐린 시선이 바다 너머의 수평선을 보았다가, 억지로 네게 돌아온다.) 내가 도피했을 리가 없잖아. 내가, 너를 도피처로 삼았을 리 없어. 멍청하게 아무 생각 없이 시시덕거리는 이 한심한 때를 바랐을 리가 없다고.
루즈코프 레베데프
(같이 수평선을 바라보다 네 손을 겹쳐잡는다.) 발렌틴. 나는 네가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해도, 이대로 살고 싶다고 해도, 그게 뭐든 네 뜻대로 해줄거야.
발렌틴 레베데프
내가 너를 바랄 리가 없잖아... (대화는 통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이 세계만을 부정한다. 나아가 자신을, 우리를. 금방이라도 발 아래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낀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그렇다면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달라 해. 나는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살포시 네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칼을 부빈다.) 돌아가면 네가 혐오하는 난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좋은 결말이 어디있어?
발렌틴 레베데프
이거 놔. (그렇게 말하나, 밀어내는 손에는 힘이 없었다.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말랐으나 우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네게서 떨어지고자 한다. 그리고, 대답을 않는다. 정해졌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아서.)
루즈코프 레베데프
나는, 네가 바랐던 이 모습으로 마지막 기억을 남기겠지. 나한테도 좋은 일이야, 이건. 너와 보낸 오늘 하루는 후회 한 점 없어. (순순히 떨어져서 거리를 조금 두고 바라본다.) 응? 티냐.
발렌틴 레베데프
(대답하지 않는다. 뒷걸음질 쳤다가, 네게서 너무 떨어지는 것 역시 불안하여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너를 똑바로 마주하지도 그렇다고 하여 외면하지도 못한 채로 대치 상황을 이어갈 뿐이다. 그래봤자 어떤 결말도 나지 않는단 걸 알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루즈코프 레베데프
티냐, 발렌틴. 겁 먹지 마. 이리와. 괜찮아. 나는 네 덕에 너와 다시 한 번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나는, 기뻤어. (네게 다가가려는 움직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가만히 마음을 읊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살살 달래가며.)
발렌틴 레베데프
나는, (문장은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 스스로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몰랐으므로.) 난... 네가 싫어. (그것이, 마지막 자존심. 울음과 함께 쏟아지는 말들이 가쁘다.) 가지 마. 네가 내 전부야. 네가 필요해...
루즈코프 레베데프
(네 답에 그저 미소만을 띄웠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시금 네 허리를 껴안는다.) 그래. 그럼, 우리 같이 여기서 살까. 끝나지 않는 여름에서 나와 영원을 함께 할래? ……그렇다면 나는 그것 또한 기쁠거야.
발렌틴 레베데프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대답이 아닐 수 없는 눈물을 떨구며, 지금이 되어서야 너를 바라본다. 어릴 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널. 아무리 부정해봤자 결국에는 제 전부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었으므로. 그리하여, 그는 한없이 너만으로 이루어져있다.)
루즈코프 레베데프
그래. 전부만 세상에 남아있으면 됐지. 그렇지?
GM
안녕을 고하고 싶지 않은데,
이 여름을 그저 마음속에 박힌 가시로 남겨두고,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겪게 될 고통을 누군가가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루즈코프 레베데프
발렌틴, 잘 도망왔어.
여름의 환상에 숨어서 허상의 행복만을 좇고 싶은 네 바람을 이뤄줄게.
GM
루즈코프는 나지막이 말합니다.
붉어졌던, 저편이 검게 변했던 잿빛이 더해진 짙붉은 세상은 루즈코프의 발끝에서부터 점차 변하기 시작합니다.
먹먹한 하늘은 청량하게 변하고, 먹구름이 끼었던 것 같은 수평선 너머는 맑게 일변하기 시작합니다.
ㅡ
눈을 뜹니다.
역광으로 비치는 당신의 모습 왼편에 푸른 하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역광으로 비치는 당신의 모습 왼편에 푸른 하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면 당신의 뺨 옆으로 땀이 한 줄기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벽에 붙어있는 선풍기는 고장 나기 직전인지라, 잘 맞물리지 않는 소리와 함께 돌아갑니다.
철제 창문 바깥에 드리워진 하늘이 물처럼 일렁입니다.
그 아래에 놓인 흙바닥 운동장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축구라도 하며 노닐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분명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공간이 분리라도 된 듯 수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과 루즈코프, 세상에 둘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청량한 하늘, 제 몸 아래로 쏟아지는 땀, 숨을 쉬면 들어차는 축축한 향.
[ED 2]
[여름이라는 이름의 환상]